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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2018.03.07 04:11

아침드라마같은_슈짐

추천 수 1 댓글 5
#아침_드라마_같은 #슈짐
민윤기x박지민




00.

-부탁할게요.

이 여자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생전 처음보는 남자에게 이리도 쉽게 머리를 숙일까. 지민의 내면에 일말의 동정이 인다.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 굳이 찾아내자면, 그건 딱 하나.

-헤어져주세요.

민윤기와 곧 결혼할 여자라는 것뿐.

여자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지민 앞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지민은 그런 그녀를 말 없이 본다. 말갛게 흘러내리는 눈물이나, 그 눈물을 애써 닦아내는 가늘고 곧은 손, 잘게 떨리는 가녀린 어깨 같은 것들을.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절대 가질 수 없던 그런 것들을.

지민의 시선이 자꾸만 그녀의 그런 것들에 닿는다. 그리곤 깨닫는다. 자신은 이 여자를 이길 수 없다.
절대. 이길 수가 없는 사람.

여자는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고, 겸손하게, 진심으로 머리를 숙여 지민에게 부탁했다. 미안해요. 제발. 그를 밀어내주세요.

지민은 마치 스크린 너머의 한 장면을 보듯 그녀의 말을 별 현실감 없이 주워듣는다. 다만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 바라보기만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생각과 감정들이 내면에서 엉망으로 뒤섞여간다. 그 틈에서 주워낼 수 있는 키워드 몇가지는 그저, '아. 이 여자는 참 예쁘고, 착하고, 예의바르고, 참하구나. 무엇보다ㅡ민윤기에겐 참 아까운 여자다.'

그리고, 그래서, 이 여자는 아주 나쁜 여자라고 결론내렸다.

카페에 들어서기 전, 지민은 그녀에게 쏟아낼 수십만 가지의 온갖 저주를 생각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준비한 모든 악담은 입밖으로 나올 줄 모르고 사그라들었다. 대단한 여자였다. 정말, 민윤기에게는 한 없이 아까운, 그런 여자.

-당신이 이렇게 나오면 내가 뭐가 돼.

여자는 여전히 미안하다며 울었고, 지민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참는다. 아직은 따뜻한 커피잔, 그것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민윤기를 사랑해서 생기는 이런 구차하고 구질구질한 것들을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던 신파극의 주인공은 항상 자신이었다. 상대가 이런 여자인 줄도 모르고, 감히 주인공을 꿈꿨던 것이다. 지민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분명 내가 주인공인데, 왜 이 여자가 더 주인공 같은지.

-왜 울어요. 차라리 더럽다고, 네가 나쁜 새끼라고 욕하고 찬물을 끼얹어줘야지.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박지민의 천성이란 이랬다. 저에게 모질지 못한 모두에게 한 없이 모질어질 수 있었다.

지민은 저를 올려다보는 여자의 물기 어린 눈동자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의 눈속에 보이는 자신은 삐에로처럼 요상하게 웃고 있다.

-당신 진짜 나쁜 년이야. 정말로.

지민은 더 볼 것 없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여자의 눈동자가 그를 따르지만 지민은 한시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그동안 그려왔던 시나리오 속에 준비돼 있던 한마디가 떠올라서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추어 선다.

서서히 뒤돌아 보면 여자는 손까지 바르르 떨어가며 울고 있다. 어차피 승자는 불 보듯 뻔한데 마치 이미 패배한 사람처럼.

지민은 참지 않고 오래전부터 몇 번이고 연습했던 한마디를 내뱉는다. 진짜 그녀가 패배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 없어도 어차피 당신은 민윤기 평생 못 가져. 그 자식 당신 같은 여자한테는 세울 줄 모르는 고자거든.

여자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눈을 꾹 감아버린다. 서러운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여자는 더 처연해지고, 지민은 더 못나졌다.

지민은 미련 없이 카페를 나섰다. 딸랑, 방울 소리만이 지민의 퇴장을 마중한다. 그리고 지민은 결국 인정했다. 이 신파 속 가련한 주인공은 저 여자라는 것. 그리고 이 신파 속에서 사라질 유일한 악역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
이제 이 악역은 민윤기 인생에서 곧 사라질 시간이라는 것.
그럼에도 정처 없이 걸으며 문득 입밖으로 내뱉는 말이란. 어쩜 그리 한결 같은 지.

-보고 싶다..

민윤기가 밥 먹고 담배 하나 피우는 것처럼, 박지민도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숨만 쉬는 데도 민윤기가 생각나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01.

오늘따라 민윤기는 더 멋있었다. 지민이 감히 자신의 눈에 그를 담지 못 할만큼.

-지민아.

-응.
-박지민.
-...왜.
-왜 나 안 봐.

뭐라고 해야할까. 형이 너무 멋있어서? 당장이라도 키스하고 싶어 덮칠까봐서? 그도 아니면.

형이 나 몰래 하는 그 결혼, 하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어질까봐서?

하지만 지민은 제 속마음을 바르고 진실되게 말할 수가 없다. 천성이 그랬다.

-그냥. 못 생겨서.

이렇게밖엔 말할 수가 없다.

-언젠 잘 생겼다며?

-내가 언제?
-.. 야, 너 진짜..

윤기가 웃는다. 지민은 웃을 수가 없다. 들여다보고 있던 전공책만 더 들여다본다. 활자가 눈앞에 있지만 읽지는 못한다. 그의 내면에서는 온갖 충동들과 대쪽 같은 이성이 아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윤기는 지민이 앉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지민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손길이 점점 끈적해지더니 이내 지민의 티셔츠 안으로 파고든다. 옆구리를 쓸어내리는 손길에도 지민은 꿈쩍하지 않고 전공책 한 페이지를 넘긴다. 다 읽지 않았지만, 아니, 한 자도 읽지 못했지만. 일단 한 장을 넘긴다.
윤기의 손길이 슬그머니 멈춘다.

-지민아. 형이 뭐 실수한 거 있어?

응.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박지민의 천성이란 원래 그러니까.

-아니. 그런 거 없어요.

-그럼 대체 왜..

그러게. 도대체 나 왜 이러지. 지민은 입술만 깨문다. 결국 그의 허리춤에 머물던 윤기의 손이 떨어져나간다. 순간 지민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다. 저도 모르게 멀어지는 그 손을 붙잡으려 뒤늦게 손을 뻗어보지만 이미 윤기의 손은 저 멀리 떨어져있다. 지민은 얼른 제 손을 거두어들인다. 마치 내민 적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형 내일부터 출장이야. 이제부터 보름이나 못 볼텐데 너 이럴 거야?

지민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여전히 눈은 전공책의 활자에 집중한 채 입술에 거칠게 돋은 거스름을 물어뜯는다. 형. 가지마. 출장 가지마. 안 갔으면 좋겠어. 나 다 알아. 그래서 
형이 안 갔으면 좋겠어. 출장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어.
그 여자랑. 결혼 같은 거.

-지민아.
-...
-박지민.

톤이 낮아진 목소리. 평소 박지민이 사랑해마지 않던 민윤기의 목소리다. 그런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불러주는 민윤기라니. 감정이 물씬 묻어나오는 목소리라니.

이제 지민은 말을 잃었다. 왜 너무나 감동적일 땐 오히려 말을 잃는지.

-...

-아니야. 됐다.

그러나 민윤기는 박지민의 마음과는 다르게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예 지민의 옆자리를 벗어나버린다. 뒤늦게 고개를 든 지민은 윤기의 등만 보고 만다. 형이 좀 전에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먼저 자라.

서재로 들어가는 윤기의 뒷모습을 지민은 눈으로 조용히 좇다가, 서재 문이 그의 등 뒤로 닫히면 그대로 눈을 감아버린다.

마지막으로 제 눈에 담는 그의 모습이 제발 뒷모습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마음이 점점 약해진다.









 


 
 

 
찌통이 보고 싶어서 자급자족했던 건데..
읽어줘서 고마워ㅠㅠ 슙공 만세ㅠㅠ!

  • 백수 2018.03.07 19:23
    내가 젤 좋아하는 찌통물ㅠㅠ 개인적으로 슈짐이 진짜 잘 어울리는 거 같애 수짐 행복해야하는데ㅜㅜ근데 이거 2편은 없어백뚜야..?(뻔뻔)
  • 백수 2018.03.10 12:36
    으아아아아악 지민이 센캐 너무 좋아!!! 지민이한테 약한 민형 너무 좋아!!! 다음편 나도 기다릴겡ㅇㅎㅎ
  • 백수 2018.03.14 20:10
    진짜 다 읽을 때까지 숨참고 봤어 백수야ㅠㅠ 넘 맘 아프구ㅠㅠㅠㅠㅠ찌통물 체고댄다,,,,
  • 백수 2018.03.25 12:09
    으으억ㅜㅜ 지민이 속마음 말 못하는거 너무 찌통이야..ㅠㅠ
  • 백수 2018.04.09 01:10
    백수 당신...머야...너무 좋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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