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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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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부러진 팔의 회복 속도는 제법 빠르다고 했어. 식사 때마다 민이사님이 도와줄 수 있으면 참 좋았겠지만 회사 일도 있다 보니 혼자 끼니를 때워야 할 때가 더 많아서, 꼬마신부는 이제 왼손으로도 그럭저럭 식사할 수 있게 되었어. 미팅이 늦게 끝나서 약속한 저녁 시간보다 약간 늦게 집에 도착한 민이사님을 맞이한, 그 어느 날, 식탁 앞의 꼬마신부. 얼마나 집중했는지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열심히 숟가락질을 했어. 왼손에 어설프게 걸린 숟가락과 그 위에 얹어진 밥 한 덩이. 혼자 놔두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자니 예뻐. 이제는 저의 도움이 없어도 되나 싶어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 곧장 퇴근했어. 손에 든 봉투가 어색해 몇 번이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어. 저번에 함께 교양프로그램을 보다가 지나가는 말로 꼬마신부가 맛있겠다- 고 했던 롤케이크를 샀어. 일부러 사러 간 건 아니야. 외근을 갔는데, 알고 보니 그 카페 근처였을 뿐이야.

"……."

꼬마신부가 이걸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간질거리는 생각에 절로 피어나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못 보던 작은 운동화가 있어. 민이사님 구두 벗으면서도 운동화에서 시선을 못 뗀다. 꼬마신부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데. 한 대여섯 살쯤 된 아이의 운동화 같은데. 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 벌써 쪼르르 빠른 걸음으로 쫓아 나오는 꼬마신부인데 오늘은 조용하고.
천천히 발걸음 옮기던 민이사님이 거실에 펼쳐져 있는 의외의 광경에 우뚝 멈춰 선다. 바닥 가득 깔린 푹신한 러그 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꼬마신부랑, 못 보던 아이 모습에. 눈 가늘게 뜬 민이사님이 꼬마신부 품에 안겨 잠든 아이 얼굴 살피는데 아는 얼굴이야. 저번에 그, 병원에서 봤던.
이 아이를 만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제집에 들인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민이사님 표정 묘해지는데, 타이밍 좋게 꼬마신부가 눈을 떴어. 그러더니 민이사님을 보고 눈이 커다래져. 아, 이사님! 하는 목소리가 잔뜩 잠겨 있었어.

"오래 잤어요?"
"아, 죄송해요. 점심 먹고 잠깐 누웠는데, 깜빡…."

민이사님 질문에 대답하면서 몸 일으키던 꼬마신부는 여전히 제 품에 안긴 채 잠들어 있는 아이 보고 멈칫해. 그리고 살짝 민이사님 눈치를 봐.

"아, 이사님, 그게…."
"…이사님이요?"
"아, 아니…."

유, 윤기 씨이. 한 번은 봐줘도 두 번은 못 봐주지. 날카로운 지적에 더듬더듬 꼬마신부는 제 이름을 불러와. 그리고는 우습게도 제 이름을 부르는 그 작은 목소리에 웃음이 나서. 민이사님 표정이 조금 풀어진 것을 확인한 꼬마신부는 낯선 호칭에 얼굴 붉히면서도 또박또박 말을 이어. 병원에 물어 민이사님과 꼬마신부의 집을 알았는지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찾아와 사과하고 싶다고 했대. 그게 일주일 전. 사과는 이제 됐다고 해도 계속 찾아오던 게 그저께부턴 아이 혼자 오길래,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집 안에 들였다는 거야.

"…죄송해요."
"죄송할 게 뭐 있어요, 나 혼자 사는 집도 아니고 지민이도 이 집 주인이잖아요."
"그래도,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민이사님은 고개 저으면서 방으로 향했어. 품에 기대 잠든 아이를 조심스레 바닥에 고쳐 뉘인 꼬마신부가 벌떡 일어나 민이사님의 뒤를 쫓았지. 손이 불편해 거들어 줄 수 있는 일도 없으면서 매번 민이사님의 곁을 지켰어. 오늘처럼.

"저녁 먹기 전에 보낼게요."
"그래요."
"정말 죄송해요, 이,"
"또 이사님이라고 하려고 그러죠."

외투를 벗어 걸어놓고, 넥타이와 커프스를 차례로 풀어 놓는 민이사님 곁에서 꼬마신부는 끊임없이 재잘댔어. 아마도 미안한 모양이지. 그러다 또 버릇처럼 이사님이라고 부르려는 걸 민이사님이 저지했어. 꼬마신부는 양손 들어 제 입까지 꾹 막은 채야. 융기, 씨이. 뜨거운 것이라도 삼킨 것처럼 제 이름을 부를 때면 어쩔 줄 모르는 게 귀여워. 큰일이야. 민이사님 작게 한숨 내쉬다가 발견했어. 롤케이크가 담긴 봉투.

"이거."
"이게 뭐, 예요?"

봉투 받아 든 꼬마신부가 조심스레 안의 내용물 확인하고 팔짝 뛰었다가 곧 눈 똥그랗게 뜨고 민이사님 본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하고선. 상처가 많이 아물어 이제는 작은 거즈가 붙은 뺨이 씰룩거려. 그러고 보니 처음 뺨의 상처를 봤을 땐 그렇게 참담했는데.
직접, 다녀오셨어요? 묻는 꼬마신부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붕 떠 있어서. 민이사님 헛기침하면서 시선 피하는데 신난 꼬마신부는 여태 제가 민이사님 눈치 보던 중이었다는 것도 잊고 민이사님 고개 돌아가는 방향만 졸졸 쫓아다닌다. 사오신 거에요? 저 먹으라구요? 잔뜩 신난 목소리가 이제야 열 여덟 살 아이 같지.
그래, 열 여덟 살. 민이사님 이제야 '꼬마'신부와 제 나이 차이 떠올리고 심각해진다. 꼭 열 한 살이 차이가 난다. 열 두 살도, 열 살도 아닌. 배시시 웃던 꼬마신부가 봉투를 들고 나가다 말고 돌아보며 묻는다.

"윤기, 씨도 같이 드실 거죠?"
"……."
"네?"
"그래요, 그럴게요."

씻고 나오세요! 제 손이 아직 불편하다는 걸 잊은 모양이다. 정말로 씻고 나갔다간 다 망가진 롤케이크-와 잔뜩 울상이 된 꼬마신부-를 볼 것만 같아 민이사님은 옷을 갈아입고 손만 씻은 채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어.








민이사님 또 능숙한 손놀림으로 롤케이크 툭툭 잘라 그릇에 담아낸다. 옆에 앉아서 지켜보던 꼬마신부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 롤케이크 담긴 그릇 꼬마신부 앞에 내려놓으니까 배시시, 입가에 미소가 걸리고. 포크를 쥔 손이 허우적대는 걸 보던 민이사님 결국 보다 못해 옆자리에 앉아서 포크 뺏어 들었어. 끄트머리 조금 잘라서 롤케이크 속 가득 채운 크림이랑 같이 떠서 입 앞에 대주니까 또 조그만 입술이 빠끔 벌어져. 냠 하고 입 안에 넣더니 오물오물 씹어 넘기고는 웃는 게 마음에 드는 모양이지.

"맛있어요?"
"네에, 너무 맛있어요, 이, 아니 윤기 씨이! 고맙습니다."

잔뜩 신이 난 듯한 꼬마신부 입 앞으로 부지런히 롤케이크 떠 대령하니 주는 대로 냠냠 잘도 받아먹어. 예쁘지. 따라둔 주스까지 주니 또 꼴깍꼴깍 달게도 마신다. 민이사님은 볼 때마다 정말 신기해. 이렇게 조그만 몸에 끝도 없이 음식이 들어가는 게, 너무 신기해. 민이사님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마신부는 두 조각을 해치우고 나서야 배가 부르다고 해.

"저녁 먹을 수 있겠어요?"
"으음, 네. 먹을 수 있어요."

그러면서 또 배시시 웃어. 귀엽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민이사님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부드러운 꼬마신부 머리 쓰다듬어. 그리고나선 둘 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어. 민이사님은 민이사님대로, 꼬마신부는 꼬마신부대로 놀랐지.

"어, 내가 치울게요."
"아, 네…."

다른 때 같았으면 치우는 걸 돕겠다고 했을 꼬마신부가 귀며 볼을 빨갛게 붉히고는 조용히 빠져나가. 주책없네, 진짜. 곤란하게 만든 것 같아서 민이사님은 미안하기만 하지. 또 어설프게나마 그릇들 닦아서 치우고 거실로 나가는데 생각지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어. 아이가 일어났나 봐.

"으응, 지우야. 잘 잤어?"
"응! 형아, 지우 책 읽어줘."

책 읽어줄까? 우리 아까 어디까지 읽었지이? 꼬마신부는 잠이 덜 깬 얼굴의 아이를 보고 달콤하게 웃다가, 소파 한쪽에 앉고 제 옆자리를 톡톡 건드려 아이를 불렀어. 아까 읽던 책을 펴고 아이와 머리를 맞댄 채 어디까지 읽었는가를 이야기해. 여긴가? 여긴가 봐! 그러고선 둘이 까르르 웃어. 새롭다. 뭔가 느낌이, 낯설고 간지러웠어.

"아, 윤기 씨."
"……."
"지우야,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오. 꼬마신부의 말에 꾸벅 인사해오는 아이에게 민이사님도 꾸벅 인사를 하고, 꼬마신부를 향해 느리게 입을 열었어.

"서재에 있을게요."
"네, 네에."

좋은 인연은 아니니 아이가 불편해할 것 같아 서둘러 서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시선은 자꾸만 꼬마신부와 아이-라는 낯설고도 간지러운 그림-를 향해. 자리에 앉아 책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야. 할아버지의 소원이라 했던, 저의 아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할아버지의 소원이야. 꼬마신부의 마음은 어떨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해.
그렇다면 저의 마음은, 어떤 건가. 처음엔 부담스럽고 황당했어. 열여덟 살이라니, 소꿉장난도 아니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하는 생각에 화도 났었어. 그렇지만 사실 오늘 아이와 함께 있는 꼬마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미쳤구나, 진짜."

저와 꼬마신부 사이의 아이를 상상했단 말이야. 꼬마신부를 똑 닮은, 달콤한 미소를 짓는 아이. 씰룩거리는 뺨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울 아이.

"…하,"

민이사님 느리게 고개 숙여서 제 얼굴 감싸 쥐었어. 이제 꼬마신부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어.

  • 백수 2018.05.01 22:32
    다시 봐도 너무 달달하구 좋다 진짜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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