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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뚝거리며 걷는 꼬마신부의 뒤를 따르는 발걸음이 조급했어. 느리게 걷는 꼬마신부의 뒤를 쫓아 걸으며 민이사님은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꼬마신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했지. 

주차장 한쪽에 주차된 민이사님 차 앞에 도착해서야 꼬마신부는 걸음을 멈췄어. 기다리고 있던 기사가 문을 열어주자 꼬마신부가 느리게 차에 올라탔어. 엉망이 된 봉투를 들고 두 사람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성큼 다가와 짐을 트렁크에 실었고. 꼬마신부와 차를 나란히 타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라 낯설어. 이런 일로 함께 차를 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자리에 앉은 민이사님이 앉은 채로 눈 꾹 감은 꼬마신부의 얼굴을 살폈어. 깊숙하게 기대앉아 입술을 꾹 깨무는 게 안쓰러워서, 민이사님은 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어.

눈 딱 감고 손을 뻗어서, 떨리는 저 조그만 손을 잡아주면 좋을 텐데. 어른인 척, 너그러운 척은 혼자 다 해놓고 이럴 때면 망설이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 원망스러워. 


"이사님, 도착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어. 움직이던 차가 멈추고, 비서의 한 마디에 흐르던 정적이 깨졌어. 운전석에서 내린 기사가 꼬마신부 쪽의 문을 열어주니 느리게 눈을 뜬 꼬마신부가 천천히 움직여 차에서 내렸어. 꼬마신부 또래의 아들이 있다고 했던가, 나이가 지긋한 기사는 영 편치 못한 표정을 하고선, 차에서 내리는 꼬마신부를 지켜보고 있었어.

마음이 편치 못한 건 저도 마찬가지야. 집을 향해 느리게 걷기 시작한 꼬마신부의 뒷모습을 보던 민이사님이 주먹 꾹 쥐고 빠른 걸음으로 그 뒤를 쫓아가. 


"지민,"


닿을 듯 닿지 않는 게 답답해 용기를 내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에, 운명의 장난처럼 발을 헛디딘 꼬마신부가 크게 휘청해. 놀란 민이사님 저도 모르게 손 뻗어서 꼬마신부 붙잡고. 사고 이후라 더 놀랐는지 사정없이 떨리는 꼬마신부의 손을 보다가, 꼬마신부랑 같이 굽혔던 몸 펴면서 꼬마신부의 어깨 끌어안았어. 당황한 듯 눈 커다랗게 뜬 꼬마신부가 민이사님 얼굴 보는데 얼굴이 화끈거려 민이사님은 애써 그 시선을 외면했어.

민이사님은 집에 도착해서야 꼬마신부를 놓아주었어. 그리고는 몸을 숙여 꼬마신부가 신발을 벗는 것을 도와주었고. 숙였던 몸을 바로 했을 땐 할 말이 있는 듯한 꼬마신부와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어.


"…이사니임, 고맙습니다."


인사를 건넨 꼬마신부가 입술만 달싹이다가 느리게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어. 꼬마신부의 어깨를 끌어안았던 제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민이사님은 몸을 돌려 집을 빠져나갔어. 급하게 나오느라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었으니까.




회사로 돌아와서는 본가에 연락을 넣었어. 집안일 돌보던 꼬마신부가 다쳤으니 집안일을 봐줄 사람이 필요했지. 본가 아주머니가 틈날 때마다 민이사님 집에 들러 봐주겠다는 대답을 해왔어. 아주머니 솜씨야 민이사님 어렸을 때부터 봐왔으니 믿을만 했는데도 마음 한쪽이 불편했어. 민이사님은 괜히 의미 없이 서류만 펄럭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어.

오후 일정 없는 거 확인한 뒤에야, 일찍 들어가겠다면서 자리를 떠나는 민이사님 뒷모습을 보던 비서는 마음 없는 결혼이라고는 하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민이사님을 느낄 수 있었지. 민이사님 곁에서 보낸 세월이 헛된 게 아니었으니까. 숫기도 없어 보이는 어린 꼬마신부가 분명 민이사님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민이사님은 아마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기사도 퇴근시키고 직접 차 운전해 집으로 향하던 민이사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길가에 있는 죽집이었어. 여기 원래 죽집이 있었나. 꽤 오래 된 듯한 낡은 간판 바라보다가 차 잠깐 정차해두고 죽집에 들어갔어. 속이 아픈 건 아니지만 밥 잘 못 먹었다간 속까지 탈 날 것 같아서.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꼬마신부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 한참 메뉴판만 보다가 무난한 야채죽 포장해서 들고나오다가 문득 민이사님은 그런 생각을 했어. 내가 별짓을 다 하네 하고.


그리고 집에 도착했어. 손끝에 걸린 죽 봉투가 낯설어 괜히 쭈뼛거리며 집에 들어서는데 낯익은 얼굴이 민이사님을 반겨. 아주머니야. 이쪽도 민이사님이 반가운 건 마찬가지인지 웃으면서 인사를 해. 


"일찍 오셨네요? 사모님 조금 전에 약 챙겨 드렸어요. 아마 주무실거에요."

"아, 네."


낯선 호칭에 멈칫하기도 잠시, 아주머니는 민이사님 손에 걸린 죽집 봉투 보고 웃어.


"죽 사오신 거예요?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이따 데워서 드시도록 하면 되겠네요."

"알겠어요."

"손이 불편하셔서 그런지, 혼자서는 식사를 못하시더라구요. 이사님이 좀 도와주세요. 전 저녁 식사 준비 때문에 가봐야 해서."

"아…."

"이사님 저녁 식사는 삼계탕 끓여뒀어요, 봉투가 엉망이 다 됐길래 걱정했는데 재료들은 멀쩡하더라구요."


겉옷 챙겨 들고 바삐 현관 쪽으로 향하는 아주머니 뒤를 쫓던 민이사님은 뭐 더 할 말 있냐는 듯 저를 보는 아주머니를 보고 느리게 고개 저었어. 아직도 어린 그때의 민이사님 보는 것처럼 흐뭇한 얼굴로 웃던 아주머니가 문을 나서기 전에 한 마디를 덧붙여.


"집안이 너무 깨끗해서 제가 할 일이 없던걸요."

"그런가요."

"네, 새로 장 봐오신 것도 정리해서 냉장고에 다 넣어뒀어요. 내일 다시 올게요."

"…조심해서 가세요."


쿵, 문이 닫히는 소리를 뒤로하고 천천히 방으로 향하는 민이사님의 발걸음이 무거웠어. 커튼을 친 어두운 방 안, 커다란 침대 한쪽에 누워 잠든 꼬마신부의 말간 얼굴에 홀린 듯 침대 곁에 섰어. 한참 꼬마신부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민이사님이 천천히 침대에 걸터앉았어. 왜 이렇게 마음이 심란한지 모르겠어. 이사니임, 부르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아. 하아. 또다시 한숨이 터져 나오고. 모르겠다. 민이사님은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방을 빠져나왔어.











(5)




머리가 복잡해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어. 그래서 서재에 틀어박혀, 한동안 보지 못했던 책들을 봤어. 책을 보다 보니 저녁 시간이 다 되었길래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지. 그리고 마주쳤어. 잠이 덜 깬 얼굴로 방에서 나오는 꼬마신부.

꼬마신부는 어찌나 부지런한지 민이사님보다 일찍 일어나고, 민이사님보다 일찍 잠드는 통에 막 잠에서 깬 모습을 본 건 처음이나 다름없었어. 잘 붓는 타입인지 그 잠깐 사이에 통통하게 부은 얼굴에, 엉망으로 뻗친 머리카락이 낯설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풉,"

"……!"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나왔어. 민이사님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오니 눈을 반쯤 뜬 채 비척비척 걸어 나오던 꼬마신부는 눈을 커다랗게 떴어. 민이사님을 발견하곤 얼굴이 새빨개져 도로 방으로 들어가려 했어. 그러다가 민이사님한테 잡혔지. 


"미안, 미안해요."

"……."

"웃어서 미안해요. 너무 귀여워서 그랬어요."


귀엽다는 말도, 실롄가? 민이사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는 처음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듣고 싶진 않았어. 꼬마신부는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었어. 잠깐의 정적 후, 민이사님이 입을 열었어. 아픈 건 좀 어때요? 묻는 목소리엔 어느새 웃음기가 다 사라져 있었지. 꼬마신부가 느리게 대답했어.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걱정 끼쳐 죄송해요."


별로 달갑지 않은 사과였어. 민이사님은 묘한 표정으로 꼬마신부를 보다가 말했어.


"배고프죠? 저녁 먹어요, 우리."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죽을 꺼내 데웠어. 집안일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하나도 못할 줄 알았는데 죽을 데워 내놓는 민이사님의 모습이 꽤 자연스러워서 꼬마신부는 다시 한번 놀랐어. 민이사님은 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저는 민이사님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건 확실해. 겉모습만 보고 섣불리 판단한 것 중 어느 하나도 정확한 게 없어. 꼬마신부는 제 앞에 놓이는 그릇을 내려다보았어. 야채죽이야. 김이 모락모락, 고소한 내음이 솔솔 나는.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이거면 돼요."


좋아하는 걸 알지 못해 야채죽을 사다 준 게 못내 미안한 듯 어색하게 웃고 있는 민이사님을 보던 꼬마신부는 서둘러 괜찮다고 대답했어.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괜찮았으니까. 고맙습니다. 오늘만 몇 번째인 인사를 건네고, 욱신거리는 오른팔 대신 왼팔을 들었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몸짓으로 숟가락을 쥐려는데,


"도와줄게요."

"…네?"


어느새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숟가락을 쥔 민이사님이 후후, 입김을 불어가며 죽을 저어. 낮에 먹은 죽은 진작 소화가 다 되었는지, 고소한 냄새를 맡으니 뱃속이 요동쳐. 꼬마신부는 낯설어 어쩔 줄을 몰랐어. 이런 관심, 친절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라 어색하기만 해. 그런 꼬마신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이사님은 숟가락 끄트머리에 죽을 조금 떠 꼬마신부의 입 앞에 가져다 대. 


"아…. 제가, 먹을게요."


제 앞으로 내밀어진 숟가락 보던 꼬마신부가 뺨을 붉혔어. 민이사님 힐끗 곁눈질로 꼬마신부의 오른팔을 살펴. 그리고는 꼬마신부를 재촉해. 먹어요, 얼른. 


"지민 씨가 안 먹으면, 저도 안 먹어요."


삼계탕. 꼬마신부는 망설이는 듯 입술만 달싹이다가 작게 입을 벌렸어. 입술 틈으로 살살 죽 넘겨주니 참새처럼 예쁘게도 받아먹어. 다시 한 숟가락 떠 입 앞에 대주니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벌려. 잘 먹으니 예뻐. 처음만 어렵지 민이사님이 떠 먹여주는 것에 익숙해졌는지 이제 한 숟가락 뜨기도 전에 입을 벌리고 기다려. 진짜 참새 같아. 귀여워. 민이사님은 자기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꼬마신부 바라보고 있었어. 그런 민이사님을 깨운 건 꼬마신부였지.


"이사님,"

"…아, 미안해요."

"저, 이제 배불러요. 이사님 식사하세요."


그릇의 반도 못 비웠는데 배부르다는 꼬마신부 때문에 민이사님 표정 또 심각해지고. 삼계탕, 같이 먹을래요? 그러다 민이사님 몫으로 남은 삼계탕 생각나서 묻겠지. 꼬마신부는 손까지 내저으면서 아뇨, 괜찮아요! 하는데 민이사님 막무가내로 같이 먹자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삼계탕 가지고 와.


"맛있어요?"

"으음, 네."


괜찮다고, 안 먹는다던 사람은 어디 사는 누구였는지. 닭 다리 살 발라서 앞접시에 내어주고, 포크 챙겨주니까 왼손으로 쥐고 콕콕 찍어서 입에 쏙쏙 넣는 모양이 영락없는 어린애야. 민이사님 결국 다시 웃음 터져버려. 진짜 너무 귀엽잖아. 그런 민이사님 때문에 또 꼬마신부는 귀며 얼굴만 빨갛게 붉히고.

식탁 치우고, 설거지하는 민이사님 곁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꼬마신부는 식탁이라도 닦겠다며 행주를 쥐었어. 조그만 손이 몇 번이고 행주 고쳐 쥐는 거 보고선 민이사님 작게 한숨 쉬면서 행주 뺏어서 대신 닦아내고.


"지민 씨, 약 먹을 시간이에요."

"네에."


나란히 앉아서 하나도 재미없는 뉴스를 보다가. 문득 시계 확인한 민이사님이 약 먹어야 한다면서 물컵이랑 약 챙겨와. 생각보다 약이 많아서 조금 놀라다가, 하긴 제법 크게 다쳤으니. 하고 수긍했다가.

약봉지 뜯어 제 손바닥 위로 우르르 약 쏟아놓은 민이사님이 고민하다가 꼬마신부 보고. 꼬마신부는 낮에 아주머니가 도와주셨던 걸 떠올리며 더듬더듬 설명해. 여기, 저한테 주세요. 하고 왼손을 펴. 자그마한 손바닥 위로 알약들이 쏟아져. 민이사님 손바닥은 반도 가리지 못했던 약들이 꼬마신부 손바닥을 가득 채웠어.


"어, 물만 좀 먹여주세요."

"그럴게요."


물컵 든 민이사님 조심조심 꼬마신부 입가에 컵 대고 기울여준다. 작고 빨간 입술 빼꼼히 벌어지고 물이 쪼르륵 그 사이로 자취 감추는 거 보다가. 꼬마신부가 젖혔던 고개 세우며 입 꾹 다물자마자 컵을 뗐어. 그러자 꼬마신부는 왼손에 쥐고 있던 알약 제 입에 털어 넣고 꿀꺽, 삼켜. 물 더 줄까요? 그 많던 알약을 꼴깍 삼키는 게 신기하다가도 안쓰러워 다급하게 묻는 민이사님에게, 꼬마신부는 의연한 표정으로 고개만 작게 끄덕인다. 민이사님은 물컵을 다시 입가에 대어주면서 서툰 칭찬을 쏟아냈어.


"지민 씨 대단하네요, 약 잘 먹네."

"…이사니임,"


또다. 이사니임,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민이사님 덜컹, 제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고. 꼬마신부랑 눈 마주하니 입술 달싹이면서, 어렵게 말을 꺼낸다. 


"지민아, 라고 불러주시면 안 돼요?"

"……."

"아까는, 그렇게 불러주셨잖아요."


그리고 우리, 부부인데. 꼬마신부는 쫑알쫑알 말하면서도 뺨을 붉혀. 부끄러워서 그런 거 아니에요, 원래 홍조 있는 건데! 그리곤 제 얼굴을 빤히 보는 민이사님의 시선을 느꼈는지 바쁘게 변명을 보태. 지민아, 라고 불러주실 때, 좋았어요. 기분 나쁘시다면 죄송해요. 안 들어 주셔도 돼요. 이렇게나 말이 많은 줄은 몰랐다. 꼬마신부가 당황해 이 말 저 말 늘어놓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민이사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어.


"지민 씨도 그럼 나, 이사님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네?"

"이사님은 좀 그렇잖아요. 지민 씨 말대로, 우리 부부인데."












안녕 백수들 오랜만이야

부지런히 올려볼게^^;


  • 백수 2018.04.13 00:21
    세상에 너무 달달하고 좋아ㅠㅠㅠ 좋은 글 고마워 백수!!
  • 백수 2018.04.21 11:50
    아... 얼마나 기다렸는지
  • 백수 2018.04.22 16:06
    백수센세ㅠㅜㅠㅠ 나 이거 진짜 좋앟는데 ㅜㅜㅜㅜㅜㅜ넘 죠아 재미써 더줘 ㅠㅠㅠㅠ잘읽엇어 이사님 꼬마신부 영사해 ㅠ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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