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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시선


연성
2017.07.01 23:20

군주 1

추천 수 4 댓글 7

마타 씀





"군주님! 살려주시어라! 제발 목숨만은, 목숨만은…."


천신의 가호에 힘입어, 감히 짐승의 제왕인 호랑이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었으니, 이들 종족은 인호(人虎) 혹은 추인(貙人) 이었으며 이들 부족은 인호족(人虎族)이라 불리었다. 호족은 저들 인호를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는 데, 그것이 바로 호국(虎國) 이다.


"우덜이 뭘 잘못했다고 이라는 겨! 이 금수만도 못한 새끼들아! 워찌 아무 죄 없는 우덜을!!"


이들 인호는 성정이 몹시도 난폭하여 주변 부족들을 약탈하거나 납치해 노예로 삼곤 했는데, 호국은 전쟁과 싸움으로 근방에서 제일 넓은 영토와 많은 수의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 호국의 악명은 날로 퍼져 나아갔고, 약소한 부족들은 호국의 전사들이 지나가는 곳으로는 머리도 두고 자지 않았다.


"군주님, 저들을 어떻게 하오리까?"


이런 흉폭한 인호들을 다스리는 호국의 군주는 인호 중에서도 백색 머리칼을 가진 자만이 될 수 있었다. 위대한 백호(白虎)! 백인호들은 일반 인호들과는 힘의 차이부터 막강했는데, 현재 호족. 머리색이 증명해주는 막강한 힘으로 당당히 군주의 자리에 오른 이가 있었으니, 주변의 백인호들을 모조리 살하고 군주가 된 남자.


"여자와 아이 빼고 모조리 죽여라."


피의 군주, 민 윤기였다.





군주




“야야 너가 순심이 좋아한담서?”


“…뭐, 뭐라고? 마, 만득이 너. 미, 미, 미쳤냐?”


김 태형은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줄만 알았다. 2년간 품어온 숭고한 짝사랑을 까발려질 뻔했기 때문이다. 애써 부정해보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숨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데? 너 순심이 좋아한다고 우덜 부족에 소문 쫙- 나부렀어, 발뺌할 생각 말어.”


“아, 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녀, 임마, 내가 순심이 고 계집앨 왜 좋아하냐?”


“참말 아녀? 너 그 곶감 걸구 아녀?”


“아, 아니라니까. 순심이 고것, 입도 크구 얼굴도 못났구, 성질도 억센데 내가 그런 앨 왜 좋아해? 웃긴다, 야. 하하! 말띠부족 자존심이 있지! 내가 미쳤다고 고 계집앨 좋아하겠냐? 내가 걜 좋아하면 미친놈이다,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난 미친놈이다!! 김 태형은 속으로 내적 고함을 지르면서 억울한 맘을 달랬다. 울 순심이 을매나 예쁜데…. 그런데 그런 태형을 보는 만득의 눈빛이 심상찮았다. 한참이나 미친놈 소리를 지르며 발악하던 태형이 슬쩍 만득을 살피니, 그의 시선은 태형이 아니라 그 너머다. 태형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수, 순심아!!!!”


“…오라버니, 미워!”


순심이었다. 그녀는 대화의 내용을 이미 다 파악했는지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라져버렸다. 김 태형은 무릎을 털썩 꿇었다. 방년 17세.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을 알아버린 것이다.


“워매, 이게 뭐하는 짓이데? 야야, 순심이 운다, 울어. 워째쓰까잉…, 하긴 쟈도 여잔디….”


“….”


“왐마? 태형이 너도 우냐? 너 순심이 싫어한다 안갰냐? 야야, 태형아. 너 어데가부냐?! 태형아! 야!!”


김 태형은 만득의 부름은 무시한 채 순심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내달렸다. 순심아!! 하고 그녀의 이름을 목청 터져라 외쳐도 본다. 어깨 너머로 찰랑이는 머리칼이 고개를 흔들 때마다 눈을 마구 찔러댔다. 눈물이 찔끔찔끔 새어나왔다. 이건…, 아파서 우는 게 아냐…. 슬퍼서 우는 거야….



*



으악!


외마디 비명소리를 필두로 사방에서 호랑이들이 덤벼들었다. 족히 2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황호들은 도망가는 말띠부족민들을 짓누르고 거대한 아가리를 들이밀며 그들의 머리통을 씹었다. 움막은 불에 탔고, 아이들은 엉엉 울었다. 웬 부족민 사내가 불붙은 나무를 휘둘러보지만 , 호랑이의 기세에 눌려 이내 머리통이 뜯기고 말았다. 난리도 아닌 와중에, 한 호랑이가 바닥을 한번 뒹구르르 구르니 이내 사람으로 변했다. 인호였다.


“살고 싶은 이는 지금 바로 마을 입구로 가라! 지금 가지 않는 이는 모조리 죽일 것이다! 살고 싶은 이는 마을 입구로 가라! ….”


인호 사내는 목청이 터져라 외치었다. 공포에 져버린 말띠부족민들은 휘청거리며 마을 입구를 향해 뛰었다, 인호 사내는 그것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배를 잡고 웃었다. 이내 다른 호랑이들도 바닥을 한번 구르면서 사람으로 변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입에 피를 묻힌 채로 킬킬거리며 말띠부족민들의 재산을 챙겼다.

김 태형은 피가 질질 나는 맨 발바닥으로 겨우 걸으며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다. 결국 그는 순심이를 찾지 못했고, 한참을 울어 눈은 팅팅 부어있었다. 그는 쳐지는 몸에 한참이나 땅을 보고 걷다가 진동하는 탄내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펼쳐진 상황은…, 말로 다하기에 잔혹한 것이었다. 태형은 휘둥그레 뜨며 근처 수풀에 몸을 숨겼다.


"군주님! 살려주시어라! 이 노친네를 봐서라도, 제발 우덜의 목숨만은, 목숨만은…."


올해로 54세나 된 노년의 족장이 누군가의 발밑에 엎드려 빌고 있었다. 그 뒤로는 무릎이 꿇린 채 울고 있는 말띠부족민들이었다. 애타게 찾던 순심이도, 얄미운 만득이도 그 사이서 울고 있었다. 주변을 살피니, 마을에 들이닥친 인간들은 하나같이 입에 피를 묻히고 호랑이 가죽옷을 두른 채였다. 그제서야 태형은 그들의 정체를 알아낸다. 호국! 잔인한 호족 놈들! 호족이 말띠부족마을을 습격한 것이었다.


가운데에 등을 돌리고 선 이는 유일하게 하얀 머리칼을 하고 백호 가죽을 두르고 있었다, 그는 제 발밑에 엎드린 늙은 족장의 손을 주저 없이 발로 짓뭉갰다. 호랑이의 힘을 초월했다는 백인호의 힘이었다. 위대한 족장은 신음부터 지르며 흙바닥에 머리를 비벼댔다. 말띠부족민들은 그것을 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무릎 꿇고 앉은 부족민 사이에서 성질 급한 장 씨가 벌떡 일어섰다.


"우덜이 뭘 잘못했다고 이라는 겨! 이 금수만도 못한 새끼들아! 워찌 아무 죄 없는 우덜을!!"


그는 억울함에 목이 메어 울분을 삼키지 못하고 소리 쳤다. 감히 나서지 못하는 태형 또한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다. 하지만 잔인한 호국 놈들은 그것마저도 우스운지 소리 내어 웃기 바빴다. 말띠부족민들의 울음은 더욱 커져갔다. 순심이와 만득이를 번갈아 보던 태형은 어쩔 줄 몰라 주먹만 꾹 쥐었다.


그런데, 군주 뒤에 서있던 인호 하나가 그의 귀에 대고 무어라 말했다. 군주가 무어라 명령했는지, 갑자기 인호 놈들이 바닥을 구르며 호랑이로 변신했다. 마침 태형은 만득과 눈이 마주쳤다. 호랑이들은 곧장 말띠부족의 사내들에게만 달려들어 그들의 목을 뜯었다. 만득은 놀란 눈을 크게 뜬 채로 머리를 뜯겼다. 허름한 사슴가죽 옷만 남은 만득의 목 위가 허 했다. 머리통이 달아난 친구의 죽음! 어찌할 새도 없이, 태형은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을 체감하며 뒤로 넘어가버렸다.


아이들은 야생의 공포에 자지러지게 울었고, 여자들은 제 아이를 달래며 울거나 눈을 가리며 펑펑 울었다. 또다시 한참 살육이었다.


말을 타고 가는 하얀 군주의 뒤로 손발이 묶인 말띠부족민들이 울며 걸었고, 그들의 재물이 실린 수레가 줄을 이었다. 군데군데 호랑이가 된 인호들이 꼬리를 살랑이며 부족민들을 감시했고, 간혹 인호의 눈 밖에 나 그 자리서 목이 뜯기는 자도 있었다.


그 너머로 말띠부족 마을은 활활 타올랐다. 까만 재가 눈처럼 내렸다.


*


“계집 열 넷, 아이가 열입니다. 먹을 것은 쌀이 말이 끄는 수레로 두 수레, 피와 수수가 반 수레씩입니다. 가축은 소와 말이 하나씩입니다.”


“많지는 않군. 깔끔하게 처리했겠지.”


“물론입니다. 개미 한 마리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고했다. 오늘 가족들에게 술과 고기를 나누어라.”


 꾸벅 고개를 숙인 인호 병사가 이내 윤기의 천막을 나갔다. 경쟁하던 백인호들의 가죽을 모조리 벗겨내어 장식한 오만한 방. 어쩌면 피의 군주라는 별명에 걸맞는 방이다.


윤기는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침대로 갔다. 끄트머리에 살짝 걸터앉아 누군가 덮어쓰고 누운 백인호 가죽을 조금 걷었다. 그 안에는 눈을 꾹 감고 있는 흰 머리의 소년이 있었다. 윤기는 손을 뻗어 그 하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밥은 먹었니.”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오히려 윤기의 손을 피하는 듯 몸을 더 웅크린다.


“뭐라도 먹어야지. 해가 네 밥을 챙겨주지 않았어?”


해는 소년의 시중을 드는 아홉 살 먹은 노비 남자애였다. 윤기의 입에서 해의 이름이 나오자 소년은 눈을 치켜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오늘 네가 밥을 먹지 않았으니 해를 죽여 버려야겠다.”


윤기는 뭐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말했다. 소년은 끝까지 윤기를 노려보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앞으로 양손을 뻗었다. 윤기는 호탕하게 웃으며 다가와 소년을 안아들어 천막을 빠져나간다.


“지민아, 먹고 싶은 것 있어?”


지민. 윤기가 살려둔 유일한 백인호이자 그의 배다른 동생이다. 날 때부터 병약하고 윤기에 의해 발목의 힘줄이 끊겨 걸을 수조차 없는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그. 역시 마음대로 죽을 수 조차 없다.



*



태형은 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 목 안쪽에 뭔가가 잔뜩 끼인 느낌이 때문이었다. 바닥을 짚고 목이 찢어져라 기침을 하니 까만 재가 끼인 진득한 침이 줄줄 나왔다. 의아한 마음에 훑어보면 제 손도 까맸고, 옷도 까맸고, 고개를 들어보니 불에 타 재만 남은 부족의 터가... 그제야 태형은 어제의 일을 기억해낸다. 호국 놈들한테 떼죽음을 당한 우리 부족!


그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몸을 일으켜 어제 사건의 현장을 향해 걸었다. 미처 불에 타지 않은 시체들에서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바닥은 재와 피로 진창이 되어있었다. 그것에 발 들이는 것을 서슴치 않으며, 태형은 만득을 찾아 헤매었다. 목이 달아난 남성의 시체는 한둘이 아니었다. 만득아, 만득이 너 어딨니. 한참을 불러보지만 평소처럼 구수한 말씨로 태형을 반겨줄 만득이는 이제 없다. 또다시 눈물이 질질 나왔다. 주먹으로 훑어보지만 재투성이 얼굴에서 까만 재만 더 묻어나올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두드려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그게 끝이었다. ...멸족이었다.


그 길로 태형은 호국의 백인호 놈을 죽여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루아침에 집도, 친구도 잃었으니 당연한 것일 지도 몰랐다. 잿더미가 된 마을에 챙길 것이 없음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그는 망설임 없이 마을 입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차오르는 눈물을 슥슥 훔치며 크게 발을 내딛어보지만 이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뭔가를 잘못 밟았는지 발바닥에서 쎄한 느낌이 들었다. 괜히 성질이나 더욱 발을 구른다. 확 걷어차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웬 조개목걸이다.

밟히고 깨져서 볼품없는 모양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순심이의 것이었다. 태형은 목걸이를 제 목에 끼워 넣었다. 호국을 향한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삶을 망가트린 군주를, 호족놈들을 죽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백수 2017.07.01 23:36
    아,,,,너무 대박적,,,, 오늘의 무덤은 여기구나,,,
  • 백수 2017.07.02 02:20
    백수야 이거 재업이지?? 나 전백시에서 본거같다 너무 대박적이야...
  • 백수 2017.07.02 02:38
    너무 좋다 ㅜㅜ 이걸 보기 위해 오늘 하루를 살았나봐 너백수 어느쪽에 있어? 절이라도 해야겟어
  • 백수 2017.07.02 15:59
    와,,,, 아,,,,,,, 대박이다 태형이가 무슨 역할일지도 기대되고 지민이와 윤기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ㅠㅠ 그냥 다 기대되고 재밌을것같아 ㅠ ㅜ백수 오래보자 ㅠ
  • 백수 2017.07.02 16:17
    이거 진짜 내가 조아했었는데 재업해조서 고마워 백수야 글 넘 대박이구 그냥 짱......
  • 백수 2017.07.02 21:58
    나 이거 전 백시에서 봤는데..너 백수 너무 대박적.....슙민 슈삐라니ㅠㅠㅜ 너 백수가 짱먹어ㅠㅠ
  • 백수 2017.07.03 05:30
    헐.....아무생각 없이 가볍게 들어왔다가 폭풍 몰입하고 봤다 미쳤어 대작의 냄새가 폴폴난다ㅜㅜㅜㅜ슙민인지 슙뷔인지 모르겠지만 지독한 관계가 될거라는건 알겠다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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